사람 한 명이라는 작고 왜소한 존재가 과연 국가적인 수사지부라는 거대한 단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겠나, 그리고 그 한 사람이 과연 그 단체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치겠나. MACUSA라는 거대한 틀에서 보면 그는 그 단체에 속한 여러 사람 중 하나뿐이었고, 작게 보면 타 수사관들과의 선배이자, 동기이자, 후배이자, 동료였다.
그런 그의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은 그의 동료에게 그를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라고 할 시, 그를 가장 으뜸으로 아름답고 찬란하게 포장할 수 있는 것은,
북극성
From Franklin
To Hector
[MACUSA, 드디어 칼을 뽑아들다.]
프랭클린은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드디어 칼을 뽑아들었다니, 이런 식으로 언론은 MACUSA의 무능함을 포장할 모양이었나. 혹시나 하여 저의 책상 위로 배달된 다른 신문들도 살펴보았지만, MACUSA가 이번 연쇄 실종 사건들에 더 중한 관심을 둔다는 소식만이 신문의 첫 면을 장식했다. 과연 기삿거리가 그것밖에 없었던 건지, 아니면 MACUSA 측에서 언론을 통제하고 있다는 뜻일지. 어느 쪽이던 오늘의 신문기사들은 전부 하나같이 프랭클린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신문들도 다 이런 모양인가 싶어 가볍게 훑어보았지만, 다른 지역 신문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샌프란치스코 오러 지부장이었던 미란다 더글래스가 오블리비아터 부서로 좌천되면서 자신이 그 빈자리를 채우라는 공고가 내려왔을 때, 그는 승진하기를 거부했었다. 단순한 책임 전가가 아닌,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절을 한 것이었다. 사건이 장기적 수사로 바뀔수록 프랭클린의 건강은 점점 더 하강하기 마련이었고, 지부장이라는 자리를 맡으면 앞으로 얼마나 더 고생하게 될지 본인조차도 몰랐으니까. MACUSA는 자신이 곧바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은 모양이지만, 자신이 지부장 자리를 맡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범인이 잡히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려보니 이미 장기적 수사에 지친 오러들은 모두 다른 지부로 이전하여 없었고, 도시에 남아있는 오러들 중 제일 경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그였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에 이르게 되었나. 똑같은 말만 여러 번 반복하는 종이쪼가리 따위 더는 볼 마음 없었지만, 나중에 언론 기록을 돌아볼 때 참고할 만한 자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한숨을 내쉬며 신문들을 접어 곱게 보관함에 넣어두고선 그 밑에 있는 서류철을 살피기 위해 잠시 주변을 정돈했다. 위에서 내려온 폴더는 MACUSA의 씰이 정갈하게 찍혀있었다. 프랭클린은 가벼운 날붙이로 폴더를 뜯어내고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저의 예상대로 다음 주부터 이 지부에 배치될 오러들의 프로필이었다. 어차피 지부장이 된 거, 기왕이면 제대로 일해야 하지 않겠나. 여러 장의 종이를 꼼꼼히 읽으며 종이를 천천히 넘기던 그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헥터 버크 수사관. 프랭클린은 조용히 그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전에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수사관 대 수사관으로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한 성깔 한다는 건 다른 지부에 있는 그의 동기들에게 전해 들어서 익히 들어온 바가 있었다. 계획성이 없어서 주변 동료들이 답답해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도, 자신의 기준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험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프랭클린이 그를 알게 된 건 그의 동기들에게서 전해진 그런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수사 기록들을 살펴보면서였다.
오러라는 작자들은 모두 어딘가 이상한 게 분명했다. 별 볼 일 없는 가문에서 갑자기 뛰어난 인재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오러에서 제일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도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 이 사람도 그와 같은 부류일지도 모르겠다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버크 가문은 유명했다. 법을 어기는 이를 잡아들이는 걸 직업으로 삼는 처지에선 안 좋은 의미로 유명했다. 그 가문에 대한 악의도, 적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버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존재는 어찌 되었거나 노마지와 마법사 모두에게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마법사를 상대로 한 게 아닌 노마지를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들이 범죄자라는 것은 변함없었으며, 그들의 후손이 마법 사회의 일원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그 범죄의 재발을 암시할 수도 있었다. 프랭클린 아이어빙이라는 오러 역시 과거에는 ‘버크 사건’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고, 분명 자신뿐만이 아닌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이라면 한 번쯤은그와 같은 생각을 거쳐 갔을 법했다.
하지만 현재의 프랭클린이 그의 기록을 살피고 또 살펴도, 그를 위험요소로 지칭할만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오러로써의 그의 수사 참여 기록은 프랭클린이 해당 기록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깨끗하고 깔끔했고, 그 점이 오히려 프랭클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출신은 유명한 잔혹 범죄자 가문이지만, 수사 기록대로 어렸을 때부터 범죄에 대한 거부감은 존재했다는 점이 그를 더더욱 알고 싶게 하였다. 이런 가문의, 이런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은 어떤 도덕성을 지니고 오러가 되었을까? 어떻게 오러가 될 생각을 했을까? 범죄자와 맞대면했을 때의 그의 태도는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대로일까? 개인 대 개인으로도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그와의 대화는 분명 나 자신의 견해를 넓히고, 더더욱 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역시 저가 무슨 수로 범죄자가 아닌 일반인의 도덕성과 정의심을 판단한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 건은 인사부가 해결할 일이었고, 문제가 될만한 인물들은 오러 합격 시험에서 한 번 걸러졌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딱히 이번 수사에 합류해도 크게 문젯거리가 될 건 없겠지. 끝나면 따로 사적인 자리에 만나서 대화라도 나눠보고 싶다고 프랭클린은 생각했다.
그는 다음 장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뒤지지도 않고 살아있네.”
그가 왔다.
그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프랭클린의 기억 속의 그는 고작 몇 년을 함께 한 동료의 병문안을 제 발로 올 정도로 친절하고 착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왔다. 본인의 의지로 온 건지, 아니면 그의 옆에 붙어있는 리버 슈미트라는 아이 때문이었는지는 딱히 상관없었다. 그가 왔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가 왔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헥터 버크는 고작 몇 년을 함께 한 동료의 병문안을 제 발로 올 정도로 친절하고 착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왔다. 타인의 의지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병실에 서 있었고, 프랭클린은 그것이 싫었다.
프랭클린은 그가 저의 옆에 있는 것이 무서웠다.
헥터 버크가 강했기 때문에 무서웠다. 저의 목을 조른 사람보다도 강했다. 헥터 버크는 곰과 같은 사내였다. 저의 목을 조른 사람보다도 더욱 키가 크고, 더욱더 위협적이었다. 헥터 버크라면 그가 한 짓과 똑같은 일을 지금 당장 벌일 수도 있었다.
헥터 버크라면 할 수 있었다.
헥터 버크라면 손을 뻗어서, 자신의 가느다랗고 무방비한 목덜미에 손을 얹어 힘을 줄 수 있었다. 헥터 버크라면 고작 팔심으로도 저의 목을 짓누르고, 저의 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 헥터 버크라면 그럴 수 있었다.
헥터 버크는 키가 컸다. 헥터 버크는 강했다. 헥터 버크는 불과 같았다. 돌발적인 사람. 즉흥적인 사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똥 같은 사람. 저가 무엇이라고 대답해도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웠다. 심기에 거슬린 헥터 버크는 저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다. 그것은 프랭클린도, 헥터 버크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프랭클린은 그가 있는 것이 싫었고, 그라는 존재가 자신과 같은 방 안에 있는 것조차도 두려웠다.
“……그럼,”
그래서 프랭클린은 싫었다.
“그럼 죽어야 했을까요?”
프랭클린 C. 아이어빙은 이제 죽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이냐고요?”
으음……. 콘래드는 길게 운을 뗐다. 사건이 막을 내리며 트로이 C. 랭커스터가 범인으로 체포된 이후, 샌프란치스코의 오러들은 이제 다시 원래 있던 지부들로 흩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랭클린은 그 서류들을 훑어볼 필요가 있었다. 남는 자와 떠나는 자. 그중에서 남겠다고 하던 자들의 경력을 다시 훑어보며 이 지부에 적합한 사람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던 아이어빙 지부장은 고심 끝에 그들과 일했던 후배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글쎄요, 일단 현장에선 있으면 든든한데, 그 외에는 딱히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라이머를 울렸다고요, 그 사람.”
“네 형제를?”
“못 들었어요? 하긴, 라이머가 먼저 말할 리가 없지만요.”
그러니까 사정은 이리하였다. 제 형제가 걱정되어 눈물을 참지 못한 라이머에게 버크는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콘래드가 죽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며 그 울음을 부추겼다는 것이었다. 형제에게 애착이 매우 강한 라이머에게는 당연히 그것이 싫었을 테고, 제 형제가 우는 것이 싫은 콘래드 역시 버크를 불편해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자기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침묵했다. 지금은 저가 입을 놀릴 수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필요했으니, 자신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흠잡을 점이 없다는 것이군.”
“그건 저보다 라이머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전 탑에 감금되어서 첫날 이후로는 같이 활동하지 못했잖아요.”
“수사 중엔 네 형제를 항상 밖으로 내보내서 말이다.”
“왜 그러셨어요?”
“네가 없는 상황에서 녀석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니까.”
“그럼 저희 셋 중에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지부장님이 제일 잘 알고 계시지 않겠어요? 왜 제게 물어보시는 거에요?”
모르고 있던 사실은 아니었다. 샌프란치스코에 원래 배치되어있던 세 명의 오러들 중에 헥터 버크의 행동 패턴을 누가 제일 잘 파악할 수 있겠느냐면, 그건 바로 프랭클린 본인이었다. 그렇다면 프랭클린이 본 헥터 버크라는 수사관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나.
남아있을지도 모를 지문을 확인하기도 전에 증거물을 맨손으로 집어든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말보다는 손이 먼저 나갈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아니, 사실 손보다는 욕이 먼저 튀어나올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그는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 내내 험악한 행동으로 제 의사를 표현하던 사람이었고, 입에 가시가 돋칠까 하루가 멀다시피 매일 빠짐없이 욕을 했던 것 같았다. 프랭클린 본인의 멱살이 오블리비아터 지부장에게 잡히던 날에도 그는 끊임없이 더글래스의 심기를 건드리며 속을 긁어댔었다. 그에 대해 프랭클린은 딱히 불만을 품고 있진 않았다. 더글래스 역시 자신의 심기를 심하게 건드렸으므로, 오히려 헥터의 그런 태도가 저에겐 더 반가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미 헥터 버크를 그런 사람이라고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제 어린 후배에게 물어본 것은.
“나 외의 견해도 필요하니 물어본 것뿐이다.”
아마 남에게 평생 말할 일 없겠지, 그 이유는. 그저 저 혼자만이 알고 있으면 되느니.
저의 왼쪽에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저보다 높게 위치한 곳이었다. 역시 헥터 버크는 저보다 큰 사람이었다. 그것만으로 프랭클린은 숨을 참아야만 했다. 혹여나 숨을 쉬는 걸 들키면 다시 빼앗기지 않을까. 이제 겨우 되찾은 한 줌의 호흡마저 다시 빼앗길까 봐.
“몸은 약했어도 정신은 건강했었는데, 죽다 돌아오니 이젠 그것마저도 안 되시나 봅니다?”
헥터 버크는 저를 비웃고 있었다.
그는 저를 비웃고 있었다. 말을 하며 억양이 위로 조금씩 올라가는 것을 프랭클린이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앞은 보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오러였다. 그러도록 훈련받았으니까. 그러니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이유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제 의지에서 벗어난 눈물이 눈에 고였다. 제 시야를 가린 붕대가 조금 젖었을까. 프랭클린은 울음을 애써 삼켰다. 우는 것은 제 의지가 아니었다. 프랭클린은 울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저 사람 앞에서는. 저 사람 앞에서는 특히나 울고 싶지 않았다.
그 말대로였다. 저는 터무니없이 약했다. 그렇지만 정신은 건강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제 부하 중에 범인이 섞여들어 있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도 그리하였고, 제 오랜 동료가 눈 앞에서 쓰러져 들이마신 숨을 다신 내뱉지 못하는 걸 보았을 때도 그는 침착하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흔들리는 건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눈물을 보여서는 아니 되었다. 그는 항상 침착했다. 그가 도모한 모든 일은 그 마침표를 저가 직접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나. 그래서 그는 항상 침착했다.
그는 침착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굳건했다.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그는.
그는 그래야만 했다.
프랭클린 C. 아이어빙이라는 수사관은 과연 뛰어난 사람이었다.
사람 한 명이라는 작고 왜소한 존재가 과연 국가적인 수사지부라는 거대한 단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겠나, 그리고 그 한 사람이 과연 그 단체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치겠나. MACUSA라는 거대한 틀에서 보면 그는 그 단체에 속한 여러 사람 중 하나뿐이었고, 작게 보면 타 수사관들과의 선배이자, 동기이자, 후배이자, 동료였다.
그는 어린 오러들의 우상.
그를 보고 오러가 되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 할 말 다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믿음직스러운 후배이자, 동료이자, 부하였다. 그는 절대로 제 국가와 제가 함께하는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을 터였다. 모든 일에 공정함과 원칙을 따지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그들을 위해 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그는 검날.
그녀에 대한 불변할 충성심을 가진 유스티치아의 수호자. 공정한 판결만을 내리는 그녀의 손에 쥐어진 날은 절대로 불공정하게 휘둘릴 일은 없을 터였다. 법조삼륜만을 배출하던 아이어빙 가문에서 처음으로 나온 오러. 판결을 내릴 사람은 이미 널리고 널렸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속을 태울 바에는, 차라리 제가 직접 현장에 나서겠습니다. 그리하여 정의가 되기를 거부한 그는 대신 그의 검이 되기를 자청했다. 그런 그는.
그는 등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집채만 한 파도 사이에서 길을 잃은 배가 난파선이 되지 않도록 길을 제시해주는 한 줄기의 빛. 수많은 배가 오고 가도 그는 오직 제 절개와 지조만을 제 옆에서 불을 밝혀줄 벗으로 삼았다. 말없이 외로이 그 자리에서 오롯이 남을 위해 불을 밝히고, 오로지 남을 위해 제 힘을 보태주었다. 가문에서도 그를 돕지 않았고, 그는 오롯이 홀로 서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했다. 타인을 이끌고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제시하는 건 이미 익숙했다. 스무 해가 가까운 세월을 이 직종에 몸담았다. 그런 그는.
트로이 C. 랭커스터는 그를 자신의 가장 이상적인 수사관이라 칭했다. 알프 W. 플루뱃은 그를 오러로서 본받을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콘래드 A.와 라이머 J. 델라 토레에게 그라는 사람은 오러의 길을 가르쳐준 스승이었으며, 그의 이상과 가르침을 받아 아직까지도 그를 모든 결정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 그의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은 그의 동료들에게 그를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라고 할 시, 그를 가장 으뜸으로 아름답고 찬란하게 포장할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 선명히 보일 만큼 빛나지만, 결코 하늘에서 제일 밝은 빛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하늘에서 제 자리를 지키며, 언제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단 하나의 빛나는 그 개념 자체. 다른 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리에서 이동하며 혼란을 가져오는 것과는 달리, 어떤 존재로라도 그 자리에 나타나는 별. 어두운 밤에 밤길을 돕는 등대처럼, 밤하늘을 나침반으로 삼으며 미지를 헤쳐나가는 이들을 언제나 대가없이 도와주는 존재.
북극성.
그것이 바로 프랭클린 C. 아이어빙이라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 말이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나왔다면 나는 덜 상처받았을까. 병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프랭클린은 겨우 참았던 숨을 가냘프게 헐떡였다. 손은 이미 제 의지를 벗어나 움직이며 제 목을 감싼 붕대의 끝을 풀어헤쳤다. 곧 드러난 목에는 이미 몇 개의 흉터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떨리는 손끝으로 정신없이 제 목을 긁고, 또 긁었다. 손끝에 따뜻한 무언가가 닿을 때도, 목에서 칼로 살을 째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선배님!”
선배님, 안 돼요. 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제 제자였던 아이가 병실 문을 열고 다가와, 제 손을 조심히 잡아 목에서 떼어내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에 붙잡힌 프랭클린은 그를 뿌리치려 팔을 움직였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저는 원래 그런 존재였다. 약하디 약한 민들레 홀씨 같은 존재. 바람에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였다. 검도, 등대도, 그 어느 무엇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하나의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몸이 아픈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의 육체는 아직도 그 후유증을 간직했다. 그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그는.
“놔드릴게요, 선배님. 그러니까 긁지 마세요. 어서 치료 받아요, 네?”
그 말과 함께 라이머는 프랭클린의 손을 놓았다. 뜨거운 피가 제 목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프랭클린은 겨우 입 틈새 사이로 숨소리를 겨우 낼 수 있었다. 내게 아직 피가 흐르는구나. 내겐 아직 온기가 남아있구나. 나는 살아있구나.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계속 살아있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아무리 어둠 속에서 횃불을 들고 어둠을 밝혀도,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스무 해에 가까이 제 몸을 기꺼이 던져 세상을 구하겠노라 하였지만, 세상은 저를 외면했다. 아직은 제가 필요하다는 말도 좋았다. 아직은 자신이 쓸모 있다고 해주는 말도 좋았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이젠 조금 쉬어도 된다고, 아무도 탓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런 바람조차도 어리석었을까. 프랭클린은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를 막으려 손으로 제 입을 꾹 눌렀지만, 불규칙적으로 바뀌는 제 숨소리는 어찌 가릴 방도가 없었다. 라이머는 그런 저를 자신의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 안정을 주려는 행동이었겠지만, 제 어린 후배에게 그런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는 사실이 저를 쉴 새 없이 괴롭히며 이미 한 풀 꺾인 자존심을 다시 한 번 짓밟았다.
헥터 버크가 제게서 등을 돌렸다. 그래, 그럴 줄 알고 있었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때, 9년 전의 샌프란치스코의 한 아침, 라이머의 눈가가 밤새 울다 빨갛게 짓눌린 것을 보며 프랭클린은 헥터 버크가 그런 사람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은 동료들 사이에서 소란을 피우며 내부 분열을 일으킬 뻔한 그의 행동을 눈감아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저에게 강함의 상징이었으니까. 애초에 강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서부터 오러라는 직업을 꿈꾼 프랭클린에게 그보다 더 좋은 예시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헥터 버크가 될 수 없었다. 그는 강해질 수 없었고, 헥터 버크는 저에게 손에 닿지 않은 하늘의 별 같은 존재로 남았다. 그는 북극성의 북극성이었다.
하지만 북극성에게 북극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있었다 해도, 그것은 오로지 추상적인 개념뿐이겠지. 프랭클린은 저를 안은 후배의 품에서 작게 우는 소리를 내며 앓았다. 저가 우상으로 삼은 별이 갑자기 하늘에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정녕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건가. 프랭클린은 답을 알지 못했다.
당신은 이 사실을 모르겠지. 앞으로도 평생 모르길.
그는 이 이상 추락하고 싶지 않았다.
별은 공허한 밤하늘 너머로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등대를 밝혀줄 사람은 처음부터 오로지 저 자신뿐이었다. 양날의 검은 결국 저 자신을 베기 마련이었고, 우상은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었다.
북극성은 누구를 보며 항해를 해야 하나. 어둠 속의 횃불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2019.02.16